‘비엔나’는 비엔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부터 많이 들었던 귀에 익은 단어이다. 내가 어렸을 때 당시 비엔나소시지는 아이라면 너무나 좋아하는 반찬이었고, 성인이 되었을 때 카페에서 비엔나커피를 시켜야만 조금 멋진 사람으로 보였던 만큼 비엔나는 너무나 친숙한 단어이다. 나뿐만 아니라 비엔나를 찾은 여행객들이 웃으면서, “비엔나소시지와 비엔나커피 어디서 먹을 수 있어요?”라고 질문하는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너무나 가까운 비엔나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이자 미술 · 건축 · 문화 예술 분야가 발달한 도시로서 사람들이 꼭 방문하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비엔나를 방문하게 된다면 계획했던 시간들을 잊어버리고, 오랜 시간 머물도록 여행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들이 무척 많다. 파리에 있는 몽마르트 언덕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영원한 안식처라면, 비엔나는 음악가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예술과 낭만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곳이다. (30쪽)
클라겐푸르트는 오스트리아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로,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낯선 도시이다. 다른 오스트리아 도시와 마찬가지로 구시가지가 아름다우며, 바로크 대성당 등의 유적과 아름답게 복원된 르네상스 양식의 아케이드 정원은 명망 높은 유로파 노스트라 디플로마(Europa Nostra Diploma)를 세 차례나 수상했다. 현재 이 정원에는 현대적인 부티크와 다양한 바, 소박한 노천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
도시를 다니다 보면 중세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곳 습지에서 살았다고 알려진 날개 달린 전설의 용 린드부름 분수가 높이 세워져 있다. 또한 이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현대 미술관에서 실제 사람 크기의 청동상 마그달렌스 베르크의 청년 등 로마시대 유적을 전시하고 있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110쪽)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중 하나로, 성 비투스 대성당을 보고 난 후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로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몰려가는 곳이 있다.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색색의 집이 늘어선 골목이 나오는데, 이 골목이 바로 ‘황금소로’이다. 마치 동화책 속에 나올 법한 아기자기하고 예쁜 집이 나란히 서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끈다.
거리 중간쯤에는 한때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작업실이었던 22번지의 푸른색 집이 있다. 이 집에서 카프카가 프라하성을 배경으로 한 소설 《성(城, Das Schloss)》을 집필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특히 관광객에게 인기다. 현재는 카프카 관련 서적과 엽서 등을 파는 서점이 되었다.
황금소로의 집들은 16세기 성에서 일하는 시종이나 집사, 보초병이 살기 위해 지은 것이다. 그 후 루돌프 2세가 고용한 연금술사들이 모여 살면서 불로장생하는 비약을 만들 궁리를 했다고 해서 ‘황금소로’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또는 금박 세공사들이 살아서 황금소로라고 불렀다는 말도 있다. (176쪽)
유네스코가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가진 나라로 지정할 정도로 부다페스트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도시이다. 부다페스트는 부다(Buda) 지역과 평야지대인 페스트(Pest)로 나뉘는데, 부다는 ‘물’을 뜻하고, 페스트는 ‘평야’를 의미한다. 오랫동안 두 지역은 별개의 도시로 발달해 왔으나 이슈트반 세체니(Szechenyi) 백작의 노력으로 1872년 도나우강 위에 다리를 개통한 이후 비로소 두 도시가 합쳐져 오늘날의 부다페스트란 지명을 갖게 되었다.
도시를 다니다 보면 궁금한 점들이 하나둘 생기게 마련이다. 특히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부다페스트의 상징물 ‘세치니 다리’일 것이다. 부다 지역에서 살고 있던 이슈트반 세체니 백작이 페스트 지역에서 살고 있는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들었으나, 악천후로 8일 동안 배가 운항하지 못하게 되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자 크게 괴로워했다.
그 이후에 그 누구도 자신과 같은 상황을 겪지 않도록 사람들의 불편함을 덜어 주기 위해서 자비로 이 다리를 건설하였다. 이 다리가 개통된 이후 부다페스트는 급속히 발전하여 현대적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2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