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음의 삶
남자들은 항상 목적 지향적인 데 비해 그 목적을 이루는 방법을 모르거나 그 목적을 향해 나갈 힘을 조절하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남성 에너지는 파장이 거칠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사고를 내고 난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목적 없음이 이끄는 삶’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부성적인 축이고, ‘목적 없음이 이끄는 삶’은 모성적인 축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 두 축의 균형이 필요하다. 남자들이 퇴근 후 집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은 쉼을 위해서다. 그러나 집이 목적 없음의 공간, 쉼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면 남자들은 술집으로 또는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목적 없음은 마치 젖 뗀 아이가 엄마의 품이 좋아, 엄마의 품 그 자체로 만족을 누리는 것과 같다. 아무런 책임도 없이 아무것도 아닌 채로 있을 수 있는 신비한 권리다. 여성이 목표를 향해 달린다면 남성보다 성공할 확률은 그만큼 더 높아진다. 여성이 이미 갖고 있는 여성성에 ‘목적 있는 삶’은 균형을 맞추어 주지만, 남성이 목표만을 향해 돌진한다면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다람쥐 쳇바퀴의 삶을 살거나 난파하게 된다.
밤의 쉼은 목적 없음이고 낮의 활동은 목적 있음이다. 이 두 축이 항상 함께 받쳐 주어야 길을 갈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부성의 축인 ‘목적 있음이 이끄는 삶’만 있으면 되는 줄 안다. 모성성의 축, 곧 목적 없음의 삶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인간은 한 가지 축으로 항해할 수 없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것은 ‘목적 없음이 이끄는 삶’이 선행될 때만 유효한 것이다.
목적 없음, 아무것도 아닌 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거기에 에너지의 인풋이 있게 된다. 목적은 있는데 나아갈 힘이 없거나, 힘은 있는데 목적이 없거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데 다람쥐 쳇바퀴만 돌리고 있다면 두 축의 균형을 생각해 볼 일이다. 인생 초기 엄마의 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목적 없음’에 상실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을 채워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