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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3권)

    • 저자
      전창일.김상구
      페이지
      630 p
      판형
      152*225 mm
      정가
      25000원
    • 출간일
      2023-04-05
      ISBN
      979-11-6752-280-1
      분류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책과나무
    • 판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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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희망과 절망을 오갔던
2000년대의 통일 정책과 통일운동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 제3부 반-통일운동 세력과의 투쟁

호산 전창일의 일생을 통해 한국에서 펼쳐진 통일운동을 기록하여 분단 77년 만에 출간된 최초의 통일운동사이다.
제3부 ‘반-통일운동 세력과의 투쟁’(1998년~2022년)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등장한 많은 통일운동 단체들의 활동, 반통일 정책과 갈등을 다루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과 북의 통일운동단체들은 ‘평양 통일대축전’, ‘범민족대회’ 등의 남북교류행사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는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남북화해협력 정책은 무산되고 국가에게 배상금 이자관련 반환소송을 당한다. 2000년대 격변한 남, 북, 미국의 관계와 열정적으로 통일운동을 잇는 청년들의 활동을 담았다.
백수(99세)에 가까운 전창일의 구술대담과 회고록, 남북 해외 동포들이 연대한 범민련 관련 자료, 투옥 중 받은 편지, 감옥에 수감된 동지들이 보낸 편지 등 접할 수 없는 통일운동에 관련된 각종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추천사>


북녘 조국 북청에서 태어나시어 대부분의 생애를 남쪽에서 보내시는 동안의, 선생님의 귀중한 생애이면서 당대의 사회사, 민족사 바로 우리 현대사가 조감되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자료와 주해 또한 이 저작의 실증력과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었습니다.
- 권오헌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헤아려 보니 선생님과의 인연이 20여 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긴 세월 동안 출석 모범생이 된 이유가 있습니다. 서둘지 않으시면서 깊은 연구와 통찰을 겸한 끊임없는 공부와 실행을 삶을 통해서 실천하시는 그 열의에 저도 모르게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 이석영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가끔 선생님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얘기가 나돌았다. 왜 그럴까? 이 책을 읽어보면 자연스레 풀릴 것 같다. 선생님께서 6·25 동란 전후 겪으신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은 상상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가혹했다. 이런 가운데서 용케도 버티셨고, 또 엔지니어, 지식인, 통일일꾼, 번듯한 직장인으로서 각양각색의 삶의 여정을 밟으셨다. 일반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러한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난 현장이 바로 우리의 해방공간과 통일운동 및 혁신운동의 현장이다.
-강정구 전 동국대학교 교수


전창일 선생님께서도 시대를 너무 앞서가시는 바람에 기구한 운명을 만들고 험난한 시련을 겪으셨습니다. 이 책 제3부 '전창일의 맺음 글'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통일문제에 대해 좋은 글을 쓰신 분, 저서 발간하신 분들과 감사와 격려 편지 등을 전자우편(e-mail)으로 교류하여 교우관계를 형성하며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학자들을 나이의 차이를 떠나 나는 학문적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그리고 나열한 10여 명 이름엔 '이재봉 교수'도 끼어있군요. 쑥스럽지만 저를 이토록 아끼고 사랑해주신 선생님을 곧 찾아뵙고 감사와 존경의 큰절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평화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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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호산 전창일

•.1928년 함경남도 북청군 신북청면 보천리 출생(11월 18일)
•.1947년 북청공업학교 졸업 후 월남, 한국대학 입학
•.1949년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1960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중앙위원으로 활동
•.1974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조작) 사건으로 연루되어 무기징역 선고받고 1982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출옥 후, 사면복권
•.1988∼1990년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공동본부장으로 활동
•.1991∼1998년 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상임부의장으로 활동 중 세 번 투옥
•.1998∼2010년 민족화합운동연합 공동의장으로 활동
•.2007년 8월 23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관련 증서를 받음(증서 7475호)
•.1999∼2008년 통일연대 상임고문
•.2022년 현재 한국진보연대, 진보당 고문

편저 김상구

역사는 정확하게, 정직하게 기록된 후 해석·평가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사, 현대사에 관한 공부를 하며 기록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사 관련 저서로 『5·16 청문회』(2017), 『김두한 출세기』(2015), 『김구 청문회』(2014), 『이승만의 숨겨진 친일행적, 다시 분노하라』(2012) 등이 있고, 독립운동 및 종교 비판 관련 저서로 『김규흥 평전』(2018), 『전쟁과 기독교』(공저 최천택)(2013), 『믿음이 왜 돈이 되는가』(2011), 『범재 김규흥과 3·1 혁명』(2010), 『예수 평전』(2007) 등이 있다. 그 외 『정판사위폐조작사건(가제)』을 출간 준비 중이며, 향후 『서북청년회와 배후 세력(가제)』을 집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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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1장 6·15, 10·4 선언과 인혁당 무죄투쟁

01 김대중 정권의 통일 정책과 통일대축전의 무산 12
02 민화련·민화협의 출범 그리고 범민련과의 갈등 31
03 마지막 범민족대회 46
04 범민족대회의 소멸과 6·15 공동선언 55
05 6·15 공동위원회의 성립과 10·4 선언 98
06 인혁당 무죄투쟁 124
07 무죄 받고도 죄인이 되다 141
08 박정희가 물고문·전기 고문하더니
박근혜가 ‘이자 고문’ 하더라 162

제12장 반-통일 정책과 통일운동의 불씨
01 전창일이 바라보는 한국 정치 현실과 미래 228
02 5·24 조치와 대북 제재 304
03 반국가단체와 이적단체 그리고 통일운동의 불씨 336
강희남 목사와 연방통추 370
05 통일대박론과 촛불 정국 422
06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정상회담 457
07 전창일과 청년들 529

표 목차
표21: 범민족대회 개최 일람표 51
표22: 6·15 북측위 임원 명단 100
표23: 6·15 남측위 임원 명단 102
표24: 6·15 해외위 임원 명단 104
표25: 인혁당·민족일보·아람회 사건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164
표26: 천안함 침몰상황과 원인 305
표27: 천안함 침몰 보도 목록 306
표28: 반국가단체, 이적단체 목록 343
표29: 조선일보의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 목록(일부) 425
표30: 세월호 침몰 전후의 상황 및 보도 437
표31: 북조선의 핵 및 미사일개발 일지 462
표32: 하노이 회담 결렬 원인에 대한 북미의 입장 516

자세히 보기 목차
38. 2001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여(홍근수) 70
39. 6·15 남북 해외 공동행사 공동준비위 결성선언문(2005.3.4.) 106
40. 국정원으로부터 인혁당 부당이득 배상금 반환소송을 당한
77인의 호소문(2013.7.27.) 167
41. 유신독재 인혁당 재건위 사건 반국가단체 고문조작 국가범죄
주범 박정희 고소(2019.4.9.) 215
42. 한국 정치 현실과 미래 235
43. 천안함 사태 관련 대북 조치 발표문(5·24 조치) 320
44.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2005.11.25.) 391
45. 천만 동포들에게 드리는 글:마지막 고별사(2009.5.1.) 410
46. 김정은 북한(조선) 노동당 위원장 육성 신년사 전문(2018.1.1.) 464
47. 한(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4·27 선언, 2018.4.27.) 490
48.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도널드 제이·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 사이의
싱가포르 수뇌회담 공동성명(2018.6.12.) 499
49. 9월 평양 공동선언(2018.9.19.) 504

전창일의 맺음 글, 인혁당 영어(囹圄)의 수업을 마치면서 548
연보: 해방·통일 관련 현대사 연표 및 전창일 연보 558
부록: 전창일 수신함 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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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개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함께 많은 통일운동단체가 출범했다. 첫해인 1998년에는 정당, 사회단체 협의회 형식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통일부에 등록된 사단법인 민족화합운동연합(민화련)이 출범했다. 이듬해 오월에는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이 주도하는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자통협)이 새 민간 통일 협의체로 등장했다. 자통협은 민화협에 속하지 않는 전국연합과 민주노총, 평화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전농, 민가협, 유가협 등 25개 단체들이 지난 3월 9일 첫 준비 모음을 가진 후 5월 7일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창립선언을 했다. 

 자통협과 범민련은 1999년 ‘하나의 대회’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전국연합과 민주노총이 범민련이 주도하는 범민족대회에 참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전국연합은 범민련 노선을 비판하는 민족회의에 합류했던 바 있으나, 범민련 초창기처럼 다시 연대하게 된 것이다.(47쪽)

 

 

6·15 공동선언 이후 통일운동 조직체 간 갈등을 봉합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져 유력한 통일단체가 새로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 단체의 하나가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통일연대)’다. 2001년 3월 15일 오후 1시, 종로5가 기독교회관 신관 중강당에서 전국연합과 범민련 남측본부, 한총련 등 30여 개 단체가 통일연대 결성식을 가졌다. 지난해 12월 4일 ‘6·15 남북공동선언에 동의하는 단체나 개인은 모두 함께 한다’는 기치 아래 준비위원회 형태로 발족한 뒤 3개월여 만에 공식출범한 것이다. 결성식 이틀 전인 3월 13일, 민주 노총에서 박순경 공동준비위원장의 사회로 열린 10차 집행위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직기구 및 인선 안이 상정되어 승인되었다.(83쪽)

 

2007년 10월 2일,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의 첫날이다. 이날 오전 7시 55분께 전용차 편으로 청와대를 떠난 노 대통령은 1시간여 만에 군사분계선 앞 약 30m 지점에 도착해 하차한 뒤 간단하게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오전 9시 5분경,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 북측 관할 지역 내로 진입했다.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방북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이 역사적인 장면은 TV를 통해 생중계됐고, CNN 등 외신들도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117쪽~118쪽)

 

우리는 그런 모의를 한 바가 없다. '자술서를 믿을 수 없다, 본인의 대질을 요구한다'고 했더니 끝까지 대질을 안 시키더라. 그리고 수사관들은 이런 요지로 자술서를 쓰라고 했다. '사실이 아니니 쓸 수 없다, 나는 내 양심상 유신헌법을 지지할 수 없었고 이런 폭력행위는 한 사람이 없고 다른 사람도 그렇다'며 부인했더니 미리 준비한 참나무 각목으로 개 패듯 패는데, 하도 얻어맞아 지금도 허리를 잘 쓰지 못한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지하실에 끌고 내려가서 팬티까지 모두 벗긴 뒤 손목까지 꼭 묶는다. 그런 뒤 머리에 수건을 씌우고 콧구멍에 물을 붓는다. 그러면 숨을 쉴 수가 없다. 말도 못하고 결국 기절할 때까지 그것을 반복한다. 그러면 완전히 뻗어 정신도 못 차리고 콘크리트 바닥에 나체로 누워있게 된다.(135쪽)

 

전창일은 바정연 심포지엄을 통해 핵 문제, 분단과 통일문제, 미국의 실체 등 예민한 문제를 거론하였고, 연방제 통일·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 등 평소의 소신이자 지론을 그대로 밝혔다. 앞에서 언급한 ‘금 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문제는 ‘한국 정치 발전과 희망을 찾기 위한 시민 사회 조직의 역할과 책임’ 부분에서 거론하면서 남북 화해 협력의 상징적 사업인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마저 중단시키려고 획책하는 주체로 미국의 네오콘을 지목했다.

전창일의 심포지엄 발표 1년 후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2007년 12월 19일)에서 한나라당 이명박이 선출되었고, 집권 첫해인 2008년 금강산과 개성 관광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다음 장에서 거론할 5·24 조치로 대북 제재가 시행됨으로써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의 햇볕정책이 모두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234쪽~235쪽)

 

전창일은 수감된 동지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옥에 있을 때는 문익환 목사, 문규현 신부, 홍근수 목사, 이창복 전국연합 상임의장, 김근태 전 의원, 변정수 변호사,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장 등 수많은 동지들로부터 위로의 편지를 받았다. 물론 James P. Sinnott(시노트 신부), 恒成和子(츠네나리 가즈코) 등 외국의 인권운동가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은 통일에 대해 굳은 의지를 피력하는 청년들의 안부편지였다. ‘통일의 꽃’으로 불리는 임수경을 비롯하여 류경인(한총련, 충북대), 조유진(부산지역 청년활동가, 범민련 소속), 이동원(연세대), 김봉준(한양대), 김정애(충북대), 홍중문(홍익대) 등 많은 청년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들 중에는 “범민족대회와 범민련을 사수하여, 조국이 통일되는 날, 해방되는 날 선생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겠다.”는 결의와 소망을 피력하며 “그날까지 선생님들의 모범적인 투쟁 앞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투쟁하겠다.”는 글을 보낸 청년이 있었고, “백발의 선생님의 모두진술을 들으면서 깊은 감명과 힘찬 박수를 보내며 다음 재판에도 참석하겠다.”고 약속하는 청년도 있었다.(536쪽~5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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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고난을 극복하고 희망을 꿈꾸는
통일운동의 미래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 제3부 반-통일운동 세력과의 투쟁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는 1, 2, 3부(각 1권)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3부 ‘반-통일운동 세력과의 투쟁’(1998년~2022년)은 ⑪ 민화련·민화협의 출범과 범민련과의 갈등, 마지막 범민족대회,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 인혁당 무죄투쟁, 박근혜 정권의 이자고문 ⑫ 전창일이 바라보는 한국 정치 현실과 미래, 천안함 사건과 5.24 조치, 이적단체로 몰린 통일운동단체, 통일대박론과 촛불 정국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탄핵당한 박근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통일운동의 불씨로 남은 청년들과 전창일의 고언 등이 서술되어 있다.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두 정상은 ‘통일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6·15 남북공동선언〉을 평양에서 발표했다. 북쪽의 인민들은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에서 통일의 역군으로 변모한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을 조명했고, 김정일 위원장 역시 우리 민족의 일원이라고 남쪽의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남쪽의 흡수통일론과 북쪽의 적화통일론으로, 분단 이후 늘 대립되던 남북문제에 대한 인식이 일거에 무너진 것으로 보였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 때의 〈10.4 남북공동선언(2007)〉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 시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과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2018년 6월 12일 현지 시간 오전 9시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역사상 최초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두 정상의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19년 2월 27일부터 28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두 번째 정상회담이 세간의 기대와는 달리 합의문 채택에 실패하면서 남북관계는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영국 언론 「더 가디언」은 “이 상황에서 가장 큰 패배자는 문재인”이라며 “문재인은 이제 더는 북한과의 관계를 진전시킬 수 없을 것이며, 현재로선 남북 경제 협력도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신문의 지적은 정확했다. 각종 선거의 결과가 「더 가디언」의 신뢰성을 담보해주고 있다.

2018년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치러진 17개 지역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대구와 경북을 제외한 15개 지역을 석권한 압승을 거두었다. 2020년 4월 15일에 실시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역시 민주당의 독무대였다. 친 민주당 계열인 열린민주당을 합하면 전체 의석(300석) 중 60%가 넘는 183석이 여당 몫이었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 등 선출직 공직자 대부분이 민주당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화려한 승리는 1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2021년 4월 7일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야당인 국민의 힘은 서울과 부산을 압도적 표 차이로 탈환했고, 지방의 자치단체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민주당 참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언론들은 “문재인 정부 공직자들의 성추문과 비리, 부동산 정책 실패,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등을 여당 참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외신들도 “부동산 가격 폭등과 빈부격차 확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등으로 여권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면서 야당 후보들은 기존 지지층뿐만 아니라 무당층의 지지를 받고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일견 수긍이 가면서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1년 전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를 설명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빈부격차 확대, 공직자들의 땅 투기 의혹, 코로나19 사태 등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무렵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비록 근소한 차이(윤석열 48.56%, 이재명 47.83%)였지만 정권은 국민의 힘으로 넘어갔다. 2022년 3월 9일의 대통령 선거결과는 민주당을 혼돈상태로 몰고 갔다. 그리고 윤석열 정권 취임 후 첫 선거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결과는 더욱 처참했다. 2022년 6월 1일 치러진 이 선거에서 민주당의 의석수는 광역단체장(14석→5석), 기초단체장(151→63), 광역의원(652→322), 기초의원(1639→255) 그리고 국민의 힘의 경우 광역단체장(2→12), 기초단체장(53→92), 광역의원(137→540), 기초의원(1009→1435) 등의 결과로 집계되어 민주당은 참패를 모면하지 못했다. 이제 민주당은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민주당 몰락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아야 할 때가 왔다. 민주당 지지층 중에는 소위 비판적 지지 세력이 있다. 비판적 지지론은 자신이 지지하는 당의 후보가 당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최악'이라 여겨지는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차악'이라 여겨지는 후보를 일단 지지한 뒤, 차후 비판을 통해 개선해 나간다는 논리를 일컫는다. 이때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없을 경우도 포함된다. 정통사회주의자, 복지사회를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자(사민주의), 대의제를 불신하는 직접민주주의자, 비정규직노동자, FTA체제의 농민들, 환경 문제를 포함한 생태주의자, 페미니스트·성소수자·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 그룹… 등 그 폭은 의외로 넓다. 주목할 것은 통일을 염원하는 이들의 갈등이다.

지은이의 발문 중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윤기복(1926~2003, 범민련 북쪽본부 의장), 백인준(1920~1999, 범민련 북쪽본부 의장), 여연구(1927~1996, 범민련 북쪽본부 부의장) 등은 북쪽 정부에서 장관급으로 활동했으며, 사후에도 북쪽 인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반면 문익환(1918~1994,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 강희남(1920~2009,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전창일(1928~ ,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등 남측본부 주요 인사들은 모두 옥고를 치렀을 뿐 아니라 출옥 후, 사면복권이 되어도 ‘빨갱이’ ‘주사파’ 등으로 칭하며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을 외쳤다는 죄 아닌 죄로 목숨을 잃은 이, 고문을 당하고 출옥 후에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이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는 이들 다수는 김대중 이후 민주당 정권을 지지하는 한 축이었다.

여대야소 시기였던 노무현 정권 그리고 180여 석을 가졌던 문재인 정권 때, 민주당은 적어도 국가보안법은 철폐했어야 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절대 다수당이었던 문 정권은 5.24 조치 철폐, 국보법 철폐, 진보당 해산과 이석기 의원 구속문제 등 통일 관련 현안에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취임 전 약속했던 인혁당 이자 문제조차 국정원장은 해결해 주지 않았다. ‘통일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무색하게 만든 민주당의 행태였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랬기에 문정인 정권의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열광적으로 환호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다시 냉전 상태로 돌아가자 문재인 정권은 「더 가디언」의 지적처럼 북한과의 관계를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했으며, 남북 경제 협력은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미국 정부의 꼭두각시라는 비아냥거림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고, 민중들은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비판적 지지에 회의를 느낀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비판적 지지자들을 포용하는 노선으로 변신해야 하리라 본다.

영국 외무부에서 20년간 근무했지만, 역사 관련 저술가로 더 유명한 E. H. 카아는 “서구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지배계급이 착취하기 위한 도구”라고 주장하며 “조국(영국)이 미국과 친해지기보단 냉전의 중립국이 되길 바랬다”고 한다. 한편, 카아는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그 사회의 성격을 뜻 깊게 암시하는 것은 없다.”라는 경구를 남겼다. 분단 77년이 되도록 통일운동에 관한 역사서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나무라는 듯싶다.

전창일은 백수(99세)에 가까운 고령임에도 정확한 기억과 놀라운 정열로 100회가 넘는 구술대담과 회고록을 통해 증언했으며, 그동안 간직했던 자료- 북녘가족과 주고받은 편지, 남북해외 동포들이 연대한 범민련 관련 자료, 투옥 중 받은 편지,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지들이 보낸 편지- 등을 공개했다.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 1, 2, 3부 전권은 2,000페이지에 이른 방대한 분량도 놀랍지만, 400여 개의 주석, 300개가 넘는 그림(이미지), 32개의 표, 49개의 자세히 보기 등이 수록되어 자료집으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는 전창일 선생의 삶을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재해석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향후 통일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어떻게 친북하지 않고 반북 외치며 통일운동을 이루나”라는 전창일 선생의 절규가 우리 민족의 양심을 흔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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