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세상이 타락하고 도의가 사라진[世衰道微]’ 현실에 직면하여, 정치 · 사회적 질서의 회복을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유교 사상의 기본 골격으로 담아냈다. 당시 공자에게는 정치 · 사회적 안정과 평화야말로 일생의 화두였던 것으로, 공자는 이를 유교의 근본 사상으로 풀어내고 그 실현을 위해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가 하면, 그 사상을 전승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에도 힘썼다. … 공자가 창시한 유교는 단순히 삼대 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성인의 도-덕을 밝힌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공자가 유교를 창시하고 제자를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또 스스로가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아야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고 밝힌 것처럼, 내면적 자각과 성찰을 통해 유교의 학통(學統)을 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삼대 문화의 전통과 성인의 도-덕을 드러내는 여러 관념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9-20쪽)
서당과 서원은 조선의 사설 교육 기관이다. 서당은 오늘날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곳으로, 보통 7~15세까지의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등을 공부했다.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사림이 세운 사설 교육 기관이다. 조선 건국 초부터 중앙에서 주도권을 잡던 훈구파와는 달리 사림은 15세기 말 성종 때에 이르러 중앙으로 진출하였지만, 훈구파와 대립하다가 밀려난다. 자신들의 유교적 이념을 정치에 반영하는 데 실패한 사림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구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서원을 세웠다.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중앙에서 못다 펼친 꿈을 위해 자신들이 속한 향촌 사회에서 자치 규약인 향약을 만들기도 하였다. (74-75쪽)
[핵심 키워드] 선수입지(先須立志)
『격몽요결』 제1장을 보면 먼저 뜻을 세우고 살라고 한다. 삶의 목표가 분명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성공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무엇이 성공인가? 성공하면 언제나 행복한가?
먼저 뜻을 세우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경험과 식견이 부족할 때도 뜻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가? 세운 뜻이 장기적으로 커다란 희생을 요구할 때도 그것을 위하여 기꺼이 대가를 치를 수 있는가? 한번 세운 뜻은 여건이 바뀌어도 흔들려서는 안 되는가?
내 삶의 의미를 정할 때 부모나 스승 등 타인의 조언을 어느 정도나 참고할 것인가? 아니면 내 삶의 의미는 오로지 내 몫이고 그래야만 하며, 주변 사람의 기대나 열망은 부차적일 뿐일까? 내가 정한 삶의 목표와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감당해야 할까?
내 삶의 목표를 설정할 때 나의 의지력과 실천력을 어느 정도나 고려해야 할까? 비록 의지와 능력이 모자라서 무리한 목표라 할지라도 하다 보면 그러한 문제가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것일까?
살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작은 목표들이 있고, 장기적으로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될 큰 목표들이 있다. 큰 뜻을 품고 오로지 그것에만 매진하는 사람과 작은 목표들을 차례로 달성해 가는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 바람직할까? (중략)
[생각 열기]
1. 주희가 경계하라고 가르친 일생에서 ‘후회할 일 열 가지’ 중에 “젊어서 배움에 힘쓰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少不勤學老後悔]”는 글이 있습니다. 배움의 시작과 끝은 어디까지일까요?
2. ‘학문’의 목적은 무엇이며, 왜 학문이 중요할까요?
3. 학문을 하려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4. 나는 일생을 무슨 일,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싶나요?
5.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재미있는 일, 필요한 일, 해야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챗GPT에게 묻기]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