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 이주국 장군 고택 그리고 장욱진 가옥에는 그곳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삶과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답니다. 글과 이미지로 만나 본 고택을 직접 방문해 보면 어떨까요? 집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구조를 살펴보고, 집의 매력과 특징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고택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각각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 더 매력적인데요. 지금부터 용인의 고택, 그 이야기 속으로 떠나 볼까요? (50쪽)
이자는 비록 정치적으로 자신의 뜻을 끝까지 펼치지는 못했지만, 그의 올바르고 지조 있는 성품은 이야기와 글로써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전해져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은 비록 가옥이라는 역할은 더 이상 하고 있지 않지만, 이자라는 인물과 그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본연의 아름다움과 예스러움을 간직한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택이 언덕 위에 자리 잡아 담담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처럼 자신의 중심을 지켜 내던 단정하면서도 굳건한 선비, 음애 이자를 닮은 듯합니다. (78쪽)
정조는 신하들에게 활 다섯 발을 쏘아 누가 과녁의 정가운데를 많이 명중시키는지 활 솜씨를 겨루게 하였습니다. 이때 여러 대신 중 이주국은 연속으로 다섯 발의 화살을 명중시켜 정조를 비롯한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을 감탄시켰습니다. 정조는 그의 무예가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그대가 활쏘기를 할 때 그 늠름한 모습은 마치 추운 겨울철에도 잎이 푸른 오동나무와 측백나무 같으니, 그 모습을 비유하여 오백(梧栢)이라 호(號)를 하사하노라.”
(105-106쪽)
작품 〈마을〉의 풍경처럼 산과 들만 존재했을 용인시 마북동(당시는 마북리)은 장욱진 화백이 꿈꾸던 마을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집이 있습니다. 아동화와 같이 단순화된 형상들이 평평히 나열되어 있는데도 묘하게 오히려 세련되어 보입니다. 초록빛 들판에 황톳빛 색채가 스며 있으면서 여유롭게 소를 모는 콧수염의 화가 자신의 모습과 가족이 머물러 있는 초가집 또한 황톳빛 색깔로 칠해져 솜씨 좋게 어우러져 있습니다.장욱진의 그림은 정겹습니다. “나물밥 먹고 나서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워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라고 남긴 화백의 일기 같은 글처럼 욕심 없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130-131쪽)
조선의 수도가 한양으로 지정되면서 용인은 한양과 부산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용인의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고려 말부터 사대부 가문들은 용인에 터를 잡곤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용인이씨, 영일정씨, 연안이씨, 한양조씨, 한산이씨 등이 용인을 대표하는 성씨입니다.묘역과 고택이 아름답게 보존된 용인 지역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한 조선의 건국 이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용인 사대부를 살펴보면서 용인에 대해 알아볼까요?
(1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