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아버지는 기침을 달고 살았다. 약값이 무서워 병원에 가지 않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감기로만 생각했지, 암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골골거리던 아버지는 꽃 피는 봄을 보지 못하고 겨울 찬바람 속에서 눈을 감았다.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육 남매를 위해 일만 하다 떠난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면 못이 박히듯 아프다.
대못을 떠올리면 입은 달콤하지만, 마음은 쓸쓸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단맛의 추억보다 쓴맛 같은 그리움 때문에 자주 눈이 맵다. 중년이 되어 보니 태풍에 부딪히며 살다 떠난 아버지가 애처로워 더 그립다.
지금도 나는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 태풍은 올해도 잊지 않고 찾아왔다. 결실을 기다리던 농부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는 떠났다. 나는 바람이 잠잠해지면 바닷가에 나간다. 바다에 대못처럼 박혀 있는 갯바위를 바라본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가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갯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그리운 길 하나를 낸다. 그리움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친다. (13-14쪽)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하신 듯 내가 첫아이로 딸을 낳았을 때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한 말이 미역국은 먹었느냐는 것이었다. 딸인 나를 낳고 죄인 취급을 받은 그날의 허기가 쉽게 채워지지 않았나 보다.
“너를 낳은 그해 미역이 참말로 좋았어. 장사꾼이 산후 미역까지 탐을 냈지만 내가 안 팔았지.”
팔순이 넘은 지금도 미역돌은 어머니의 든든한 주머니다. 나이 때문에 힘에 부치는 논밭은 남을 주었지만 돌은 아직도 직접 관리하고 있다. 잠깐 일을 도와준 나는 힘들어 몸살이 나는데 어머니는 멀쩡하다. 벌써 돌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니 내년에도 미역을 하실 모양이다. 발 위의 미역을 손질하는 어머니의 몸놀림이 미역돌만큼은 놓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바닷바람에 미역이 뽀송뽀송 말라 간다. 어머니의 손에서 미역이 먹음직스럽게 말라 간다. 햇살 고운 봄바람에 어머니의 지난 기억도 미역오리처럼 따사롭게 말라 간다. 먼바다에서 밀려온 파도 소리가 하얗게 말라 간다. (29-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