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저자이자 미래학자인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역사를 더 잘 이해할수록 역사는 그 경로를 빠르게 변경하고, 우리의 지식은 더 빨리 낡은 것이 된다”. 우리는 결국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 특징을 일명 ‘VUCA’라고도 한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약자로 다가올 미래상이 모호하고 변동이 크며 복잡한 데에다 그것마저 불확실하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을 예측하는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1년이 지나기 전 상당수 예측은 낡은 것이 되거나 틀린 것이 된다. 우리가 4차 산업시대의 정점을 맞이하기 전에 기술 자체보다는 그 특성과 사회적 변화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고, 지표가 아닌 거시적 흐름을 보아야 한다.
- 10p. 「서문」 중에서
노동의 비정규화 현상은 이제 더는 바꿀 수 없는 추세로 보인다. 기회는 상류층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커리어가 약하거나 국가의 안전망이 헐거운 나라의 노동자들은 플랫폼으로 흡수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고숙련 노동자에겐 ‘탄력성’을 의미한다. 그들에겐 이직의 ‘기회’이며 오랜만에 남태평양의 섬에서 몇 달간 가족과 휴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하류층 노동자에게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플랫폼의 변덕이나 시장의 변동에 따라 실직하면 다시 일거리를 찾아 나서야 함을 의미한다. 일상의 안정이 유지될 수 없다.
- 55p. 「데이터이즘(Dataism)과 인간의 가치」 중에서
이렇듯 결코 자동화될 수 없는 일이 존재했기에 인간의 노동은 단순노동에서 복합적이며 고도의 사유를 필요로 하는 고차원적 노동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했다. 이런 낙관론이 유지될 수 있는 근거는 당시 기계기술의 제약 때문이었다. 늘어난 생산성으로 인한 수요를 인간이 차지할 것이라는 낭만적 환상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늘어난 생산성으로 인한 수익을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다소 무리해서라도 새로운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투자하고, 해고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임금은 동결에 가까운 수준으로 유지했다. 이런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 64p. 「역사는 종언하였는가」 중에서
영화 〈매트릭스〉에선 인공지능이 인간을 사육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큐베이터에 담긴 인체에 흐르는 6V가량의 미세전류를 인공지능과 로봇의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물론 이것은 영화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다. 그런데 나노 바이오 기술과 웨어러블 센서의 진화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욕망했던 환상을 메타버스가 재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실제와 똑같이 보고 느끼는 판타지 말이다. 과학자들은 늦어도 10년 이내에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머리와 몸에 센서를 장착한 채 달콤한 꿈에 빠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인간의 노동력이 볼품없어져 일자리가 사라진 시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는 건 끔찍한 일이다.
-72p. 「역사는 종언하였는가」 중에서
팬데믹 초기, 영국과 미국 정부가 초기에 의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축소해서 공표한 것은 단순한 선의였을까? 이것 역시 일종의 신뢰 게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공표했을 때 군중은 패닉에 빠질 것이고 사재기는 물론 경제활동이 심하게 위축될 수 있다는 정무적 판단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더 조밀하게 연결된 사회에서 ‘신뢰’라는 통합 가치는 사회와 국가, 경제라는 시스템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114p. 「공동체주의와 신뢰자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