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나무를 보러 가는 대신 사막나무 앞에서 한참을 서서 반짝이고 있는 빛나는 눈물방울들을 통해 오래전 어린아이의 눈물방울과 나의 눈물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은 큰 것 같지만 작기도 하다. 또 둥글어서 결국에는 다 만난다. 나는 병원에 입원하면서 사막나무에서 본 나의 눈물방울을 다시 만났다. … 내가 아프리카에서 본 사막나무의 눈물은 지구 어느 높은 곳에서 흘러왔을까. 그리고 지금 그 눈물은 지구의 어느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을까. 사막나무까지 흘러 눈물을 주고 다시 흘러가던 그 눈물은 빅뱅과 혼돈 너머 존재하던 생명을 불러오는 계시였던가. 고통을 평안으로 바꾸는 메신저였던가. (30-31쪽)
집에 손님이 오시면 어머니는 낫을 들고 미나리꽝에 들어가 미나리를 베서 나오셨다. … 그때도 어머니는 하얀 수건을 쓰고 미나리꽝에 들어가셨다. 미나리꽝에 나비라도 날아오르면 하얀 수건을 쓴 어머니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 되고는 했다. 하얀 수건을 쓴 어머니가 나비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분명 나비였다. 파란 미나리꽝을 훨훨 날아다니는 하얀 나비. … 이제는 고향의 집터도, 미나리꽝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어려서의 추억은 내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한 폭의 그림이다. (60-61쪽)
내가 어려서 집 안에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 나무는 영어 알파벳 Y자로 자랐는데 아버지는 그 벌어진 틈에 작대기를 얹고 반대편에는 기둥을 세워 철봉을 만들어 주셨다. 놀기보다는 운동을 하라는 뜻이었는데 나는 놀이에 집중한 나머지 혼자 노는 법을 터득했다. 즉, 철봉에 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구경하는 놀이이다. 하늘의 뭉게구름이 빨랫줄에 걸려 있고 장독대며 마당이 전부 거꾸로 보이는데, 신기하게도 장독에 들어 있는 간장도 엎질러지지 않았고 마당을 걸어오는 할머니도 넘어지지 않았다. 빨랫줄에 걸린 빨래가 바람결에 나부끼는 걸 보기라도 하면 꼭 도깨비라도 만난 것처럼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웃으며 지낸 나의 어린 시절은 동화같이 아름다웠다. (108쪽)
나는 실내에서 신던 헌신을 신발장에 두고 왔다. 그런데 양남이는 내가 무슨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를 통째로 흠모하고 있었던가 보다. 양남이는 ‘선생님이 신발장에 두고 가신 신발을 가져다 드릴 겸 놀러 가고 싶다’는 간절함을 담아 편지를 보내왔다. … 나는 양남이가 아프기 전에 놀러 오도록 길 안내도 해 주고 마중도 나갔어야 했다. 그런데 양남이는 놀러 오지도 못하고 신발도 가져다주지도 못하고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 버렸다. … 너무 일찍 찾아온 병이었다. 양남이는 가혹하게도 편지의 답장을 받아 보지 못한 채 떠나갔다. (158-159쪽)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밤길 여행을 가는 동안은 캄캄하여서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도깨비가 나타나 내 목덜미를 휙 잡아당길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눈을 감으면 되었다. 그러고는 할머니한테 어디까지 왔느냐고 물어보면 “아직 절반 남았지.” 할머니는 대답했고 “그렇게 멀어” 나는 또 물어보고 “조금만 더 가면 되지.” 할머니는 또 대답했다. … 지금도 가끔씩 그때의 밤길 여행이 떠오르고는 한다. 그러면 내게 물어본다. “얼마큼 갔나?” 그러면 내 마음이 대답한다. “절반 남았지.” 하고.
나는 훌쩍 자라 버렸고 손을 잡고 서커스장에 데려가 주던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서커스 유랑단도 세월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피에로도 원숭이도 더 이상 만날 수가 없게 되었다. 바퀴를 따라 어디론가 떠나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어린 나에게는 항상 물어볼 수가 있다. ‘인생의 여행길이 어디쯤 와 있느냐’고. (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