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사를 ‘덕성의 발견과 발전의 역사’라 하고, 서양 철학사를 ‘이성의 발견과 발전의 역사’라고도 한다. 즉, 서양 철학의 핵심 개념은 ‘이성’이고, 동양사상의 핵심 개념은 ‘덕성’이다. 서양 철학은 이성에 기반한 합리적 사유로써 외재적 사물이나 현상을 대상으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탐구한다. 동양사상은 덕성에 기반한 공감적 감성으로써 외향적으로는 외재적 사물과 소통하고 내성적으로는 만물 공유의 마음을 찾는다. 확고한 원리이자 보편적 기준인 이성으로써 객관적 진리를 찾아내야 하는 서양 철학에서는 가변적이고 개별적인 감성은 억제의 대상이다. 덕성은 기(氣)로서 정(情)이고 氣는 변화의 원리를 내포하므로 ‘닦아지고 교체되는’ 속성을 갖는다. 동·서 사유체계의 이성과 덕성에 대한 이러한 견해 차이 때문에 서양의 사유체계에는 동양사상의 수양론과 같은 마음공부법이 없다. 동양사상이 ‘사상’이라 불리는 이유 및 서양 철학과 다른 특색은 철학과 종교가 미분화되어 마음의 구조를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존재론적 절대와 의지처를 마음 안에서 찾는다는 데 있다. (28~29쪽)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나 해탈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즉 ‘마음의 윤회’, ‘마음의 해탈’이다. 불가의 생사초월이라는 것도 육체적 생사의 초월이 아니라 마음에서 생사에 대한 두려움 등 번뇌를 극복한다는 말이다. 불가 수행의 목적은 이 세상을 그려 내는 근원적인 마음을 깨달아서 마음에 새겨진 각종 번뇌와 분별심을 걷어 낸 그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인 나와 세상의 참모습(眞如)을 여실(如實)하게 보아 삶과 세상을 순조롭고 아름답게 영위하자는 것이다. 불가사상에서는 객관적인 실재 또는 질료에 바탕한 우주론이 없고 마음이 세계를 그려 낸다고 본다. 따라서 세계의 근원인 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세상의 참모습을 보는 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계(三界)는 공간적이거나 지역적인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또 부처의 깨달음 내용인 ‘12연기(연기법)’도 오직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심층마음’을 깨닫는 불가의 수행론은 동양사상 수양(행)론 가운데 가장 치밀하다. 불교 사상 자체가 궁극적으로 마음에 관한 탐구이자 마음을 닦는 일에 관한 이론과 실천을 기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00~101쪽)
다도는 차와 차문화가 활성화되고 그것들에 대한 풍성한 기록이 육우(陸羽)의 『다경』에 담기던 당대(唐代)에 이미 육우와 함께 차를 논했던 문사 봉연(封演)과 시승(詩僧) 교연(皎然)에 의해 수양론적 의미로 자리매김되었다. 봉연은 『봉씨견문기(封氏見聞記)』 6권 「음다(飮茶)」 편에서 “이때에 이르러 다도가 크게 성행하였고, 왕에서 선비에 일기까지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하여 ‘다도’라는 말을 등장시켰고, 교연은 그의 시 「음다가(飮茶歌)」에서 봉연이 말한 ‘다도’가 음다(飮茶)에 의한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 것임을 표현했다. 즉 ‘다도’는 ‘차를 통해 도에 이르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차의 어떠한 속성이 이처럼 수양의 기능을 수행하는가? 선인들은 다도의 수양론적 기능을 말할 때 기론(氣論)에 입각해서 氣의 질료로서의 매질(媒質)역할에 주목했다. 초의(草衣)는 명대(明代) 장원(張원)의 『다록(茶錄)』을 베껴 옮기면서 책 이름을 ‘다록’이라 하지 않고 『다신전(茶神傳)』이라 하였다. 차 속에 들어 있는 우주의 청신한 기운인 다신의 효능을 간파한 것이었다. (286~2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