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흙냄새 나는 벼름빡 위
사진틀 두 개엔 할아버지 회갑 날 사진도
일등병 군인이었을 때 아버지 사진도
초례청에 모란꽃 피듯 족두리에 연지곤지
두 손을 올려 붉어진 얼굴을 가린 누님의 얼굴도
19금 내 동생 돌 사진도
세월의 더께가 파리똥처럼 얽어져 있었다 …
식구(食口)란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
웅크린 초가집 안방 오봉밥상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던 식구들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그날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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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는 누구네 집 할 것 없이 집집마다 안방 가운데쯤의 벽에 사진틀이 걸려 있었지요. 안방 천장 밑이나 대청마루 문턱 위에 빼곡히 사진을 끼워 걸어 놓았던 사진틀. … 가족으로서는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작품이 어디 있을까 싶네요. 사진틀을 채운 사진들은 가족들의 역사이면서 추억의 저장고이기도 할 테니까요. … 오래된 사진들을 골라 사진틀을 만들어 놓고 싶네요. 그러면 잊었던 추억이 돌아오고 마음이 따뜻해질 것처럼. (「사진틀」, 25~26쪽)
배꽃이 흐드러졌다며
한번 다녀가라는 고향 친구의 기별 …
하현달 뜨면 배꽃은 구름처럼 흘러간다며
곡차나 한 잔 치고 가라고
주막도 은한(銀漢)도 떠난 마을엔
밤안개인지 배꽃이 피워 놓은 구름인지
짧은 봄밤도 이경(二更)에서
삼경(三更)으로 건너가는데
곡차를 푸는 바가지는 바닥을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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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자란 고향 마을 언덕배기에 배나무과수원이 있었습니다. … 배꽃이 피기 시작하면 마을은 밤에도 흰 구름이 내려온 듯 은하수가 흐르듯 밝은 빛이 번져 나왔답니다. … 제게도 그런 친구가 고향에 남아 있었더라면, 배꽃이 피워 놓은 밤안개 같은 구름도 볼 수 있었을 테지요. (「배꽃」, 139~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