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산 차갓재에서 홀아비꽃대를 만났습니다. 오를 때 보지 못하고 내려오면서 보았지요.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는 목표가 앞서서일까요. 산을 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시야가 좁아지고, 내려올 때 비로소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일상도 무엇을 강렬히 추구하다 보면, 거기에 몰입돼 눈이 어두워지고 무리수를 두게 되지요.
지나고 돌아보면 후회할 일만 남습니다. 내려오는 마음으로 오르는 지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시력視力을 다시 정의하고 싶습니다. 크게 보고 크게 판단하는 힘이지요 (52쪽)
경쟁을 피해 소나무 숲에 터전을 마련한 노루발풀이 진정한 승자입니다. 지구 역사에 사람만큼 평생을 극렬히 싸우면서 살아가는 생명체가 있었을까요?
“이만큼 해낸 내가 대단해.”
“나는 나로서 충분해.”
이렇게 선을 지킬 수는 없는 건지요? 이제 무한 직진 그만하고, 지나온 길도 보아야겠습니다. 그동안 쌓아 오신 시간들이 빛으로 남아 있습니다.(87~88쪽)
이렇게 작은 꽃들이 모여서 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은 꽃으로는 눈에 띄지 않으니 곤충을 유혹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함께 모여 크고 화려하게 보이고자 했겠지요.
또 한꺼번에 피지 않고 차례차례 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꽃을 동시에 활짝 피우면, 태풍이나 장마가 왔을 때 한꺼번에 모두 잃는 참사가 있을 수 있겠지요. 이를 방지하고자 꽃 피는 시기를 달리했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터득한 전략은 아닐 겁니다. 시행착오도 많이 하고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도 똑같습니다.(140쪽)
꽃쥐손이 화원에 무욕無慾의 시간이 있습니다. 바람으로 꽃이 살랑이는 건지, 꽃으로 바람이 일렁이는 건지요. 순리를 거역하지 않습니다. 거센 비바람과 눈보라, 녹일 듯한 더위도 참아 냈기에 저만큼 자리 잡았겠지요. 그렇게 번창하기까지, 어느 세대인가 각고의 분투가 있었을 겁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세대가 있지요. 1차·2차·3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이제 이들이 4차 산업혁명을 넘어 인공지능 시대까지 견인하고 있습니다. 정말 슈퍼 세대입니다. 그런데 서글픈 것은 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았지, 정작 자기 돌보는 일에 소홀했다는 겁니다.(161쪽)
투구꽃을 보면서 사람의 길을 물어봅니다. 저렇게 고운 꽃이 독을 품고 있다니요. 사람세상도 주변을 돌아보면 말수도 적으면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법이 없지요. 늘 밝게 웃어 주고요. 그야말로 천사표天使標입니다.
나는 그렇게 하기 쉽지 않지만, 내 주변에 그런 분들이 많으면 좋겠지요. 이런 분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천사표라고 왜 독이 없겠습니까? 상처 난 자리에 앙금이 남는 법이지요. 독을 품어야 하는 풀꽃의 딜레마와 다를 바 없습니다. (233쪽)
겨울을 맞이합니다. 봄, 여름, 가을 숲길을 이어 주던 꽃님들을 돌아봅니다. 입춘立春이 지나야 움틀 테니, 서너 달 기다려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멈춰 있지는 않을 겁니다.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돌아볼 테고 다가올 일들도 계획하겠지요.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이웃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렇게 온정을 나누며 새봄을 약속합니다 (2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