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슨은 『재즈』에서 흑인 음악의 문학성과 흑인 문학의 음악성을 동시에 살리기 위하여 뉴올리언스 재즈의 음악 형식을 빌려 와서 민중의 목소리인 자유 변주와 즉흥 연주로 다층적인 서술 전략을 구사하였다. 서사 텍스트 안에 재즈 시대의 삶과 삶터의 현장성을, 디아스포라인의 노래와 이야기의 역동성을 이식하였다. 소설 구조로서의 재즈 형식은 그 다성성과 즉흥성을 통하여 흑인을 감정과 이성을 지닌 인간으로, 또 그들의 할렘을 평등과 자유를 누리기 위해 싸우는 전장으로 생생하게 구현하였다. 독자들은 『재즈』를 읽으면서 진정한 흑인 음악을 듣고, 또 흑인 공동체의 기억과 재기억, 정체성을 되새긴다.
(76쪽, “소설 『재즈』의 음악 세계 추론”)
대중음악이 디아스포라 문화의 생산에 앞장을 서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ᄐᆞ래 속 민족성은 결코 우려할 성격이 아니다. ‘이산되는 소리’로서의 ᄐᆞ래는 다른 세계 음악과의 접점에서 깊은 슬픔의 호소력으로 유리한 국면을 맞을 수 있다. 반다문화주의가 아닌 상호문화주의의 지향으로 거대 담론을 형성하기가 용이할 수도 있다. 바흐친(Mikhail Bakhtin)의 말대로, “내적으로 설득하는 담론의 의미 구조는 자체 완결적이지 않고 열려 있다. 그것을 대화화하는 새로운 문맥들 속에서 이런 담론은 거듭거듭 더욱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ᄒᆞᆫ돌의 ᄐᆞ래도 디아스포라 음악으로서 지속적으로 공감의 영역을 찾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것이 향후 과제요 목표다. 한국의 음악은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 곳곳에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음악도 경계를 넘어가면 그곳에서 새 디아스포라 음악으로 탄생한다.
(191쪽, “ᄒᆞᆫ돌 ᄐᆞ래의 디아스포라 서사와 미학”)
홀(Stuart Hall)의 대중문화 형성론을 원용하여 케이팝의 실태를 분석하면, 브랜드화된 케이팝은 수출 경쟁과 맞물려서 미국 스타일의 한시적 한계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스타일의 통시적 한계에 묶여 있다. 물론 혼종성 시도에 있어 타자의 정체성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충족적 정체성만으로 승부를 걸 수 없는 공시적 한계 또한 존재한다. 그래서 대안적 정체성, 즉 미래지향적인 정체성이 긴요하다. 케이팝의 승부수인 외형적 세계화, 즉 타자화에는 유사성은 있어도 차이가 부족하므로 진정성 결핍의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지역성이나 초국가적 특성을 보완해야 한다. 이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첫째, 우리 전통 음악과 대중음악을 바탕으로 한 월드 뮤직의 성격을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의 케이팝은 댄스, 힙합, R&B, 발라드, 록, 일렉트로닉 등의 편협된 장르에 국한되어 있다. 이 때문에 혼종성에 진정성을, 이산성에 지역성을 절합하는 데 제약이 많다. 우리의 말과 소리, 노래에서, 그 본유의 리듬과 억양에서 케이팝의 싹이 될 음절과 음형을 찾는 노력이 요구된다.
둘째, 오구라 키조가 주장한 유교 가치의 회귀와 같은 아시아의 공감으로 인근 지역과의 공존을 모색하기를 제안한다. 동북아 지역은 한자와 유교, 불교의 문화공동체로서 하나의 절합된 의사소통의 모델을 제시하기가 쉽다. 이수만이 일본의 자본과 중국의 시장, 한국의 프로듀싱 등을 아우르는 문화 기술의 절합을 원했던 것도 아시아를 하나의 문화공동체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세계화의 대상 지역과의 연계 맥락에 따라 달라질 다양한 입장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때 그 지역의 디아스포라인의 문화적 동화와 혼합의 접점에서 혼종성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삶과 이야기 속에는 분명 노래와 음악이 스밀 것이다. 그들이 웃고, 울고, 환호하고, 분노하는 인간 본연의 소리에는 혼종성의 음악과 노래가 자연스레 들릴 것이다. 우리는 “음악이 디아스포라 문화 생산의 선두에 서왔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302-303쪽, “케이팝의 수출 지향적 음악 정체성—존 리의 『케이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