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제는 한숨도 못 잤어요. 비바람이 아주 세차게 불었잖아요. 창문에 비치는 마당의 단풍나무가 꼭 뿌리째 뽑힐 것처럼 흔들렸어요. 지금도 비가 와요.
어제는 할머니 코 고는 소리도 안 들렸어요. 할머니는 자꾸 뒤척이시다 일어나 앉아 창문을 바라보셨죠. 깊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었지만 난 잠들어 있는 척 가만히 있었어요. 할머니가 나까지 걱정하실까 봐요.
땅에 있는 것들이 이렇게 흔들렸는데 하늘에 있는 아빠는 괜찮나요? (11쪽)
‘어? 저게 다 뭐야?’
여기가 연희가 아는 동네 편의점이 맞는 걸까요? 밝은 형광등 아래 자리 잡은 가운데 선반에 올려져 있는 물건들이 모두 다 이상했어요. 과자도 아니고, 초콜릿도 아니고, 문구 용품도 아니에요. 벽을 따라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고 있는 냉장고에 들어 있는 물건들도 모두 다 이상해요. 우유도 아니고 음료수도 아니고, 과일들도 아니에요.
연희는 원래 별의별 물건이 많은 편의점이 참 이상한 가게라고 생각했어요. 문방구도 아니면서 문방구 같고, 슈퍼마켓도 아니면서 슈퍼마켓 같고, 속옷 가게도 아니면서 속옷 가게 같고, 과일 가게도 아니면서 과일 가게 같잖아요. 마법 가게 같다고 상상하기도 했었죠. 그래도 이렇게나 이상한 물건이 많을 줄은 몰랐어요.
선반과 냉장고에 있는 건 알록달록한 커다란 알처럼 생긴 것들이었어요. 새알일까요? 저게 알이라면 유치원 때 체험장에 가서 본 타조알보다 몇 배는 더 큰 새가 낳은 알일 거예요. 연희는 고개를 저었어요. 알록달록 색색깔을 보면 알일 리가 없어요. 하지만 새알이 아니라면 도대체 알을 닮은 이건 뭘까요? (38-39쪽)
어떤 그림책에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아기를 싸고 있는 하얀 보자기를 물고 하늘을 날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아기 배달부 황새야.”
“엄마, 이러다가 황새가 아기를 떨어뜨리면 어떡해? 잘못 배달하면 어떡해?”
“걱정 마. 황새가 쿠팡맨 저리 가라일걸. 프로페셔녈 배달부야. 영어 학원에서 배웠지? 프로페셔널.”
엄마가 틀렸다. 아기 배달부 황새는 엉터리다. 아마추어 황새가 엉뚱한 곳에 아기를 떨어뜨리고 갔다. 301동 706호에 배달할 물건을 304동 706호인 우리 집에 잘못 배달했던 택배 아저씨 생각이 났다.
“아유, 배달할 게 좀 많아야죠. 피곤엔 장사가 없잖아요?”
‘피곤엔 황새도 없지요.’라면서 뻔뻔스럽게 웃고 있는 황새가 한 마리 눈앞에서 날아갔다.
하늘에서 새똥이 떨어졌다.
하늘에서 동생도 떨어졌다. (66-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