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광반조(廻光返照)에서 ‘회광’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영혼의 활동에 의해 나타나는 분별인 마음이 육근(六根: 눈·귀·코·입·몸·생각)과 육진(六塵: 육경을 발생시킨 대상) 사이의 육경(六境: 색·소리·향기·맛·촉감·이치)에서 육식(六識)이라는 앎이 일어날 때 육근의 문을 닫고 단전(丹田)에 힘을 툭 부리어 단전으로 호흡하면서 단전으로 들어온 진공의 기를 온몸에 가득 채우면서, 경계 따라 일어나던 마음과 생각을 안으로 단전으로 돌이켜 본성인 정신으로 변화시키며 입정(入定)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반조’란 입정(入定)해 있던 영혼이 육근(六根)의 문을 열고 바깥 경계를 인식하는 출정(出定)을 의미하지요.
회광과 반조를 할 줄 아는 성품을 깨달은 영혼은 안으로 회광을 하면 공적성성(空寂惺惺)한 자성정(自性定)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밖으로 반조할 때 공적영지(空寂靈知)한 자성혜(自性慧)가 나타나서 은혜와 상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생각의 능력이 생기기 때문에 세상에 유익을 주고 자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단전호흡은 공기의 양을 몇 배로 많이 마실 수 있게 하고 몸속의 기에 압력을 가합니다. 공기에 압력을 가하면 수분이 생기는데, 이는 흡입된 공기 중의 산소와 수소가 결합하여 물이 된 것이지요. 이 물은 혈액의 양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수분이 부족하여 말라 가는 세포들에 생명을 불어넣기도 하지요.
그러나 자신의 영혼이 단전에 주하지 않은 채 가슴호흡을 하면서 바깥 경계에만 마음과 생각을 일으키면 기운은 점점 줄어들어서 정상적인 순환을 하지 못함에 따라 기력이 약해지고, 음과 양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어 몸에 병이 생기고 심하면 생명까지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심신을 갖추기 위해서는 생각을 단전으로 하고 기운도 단전에서 중심을 잡아야 자성의 정혜계(定慧戒)가 세워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삶이 이루어져서 은혜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지요. (본문 중에서)
위의 문장은 우주의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인 일원상진리와 하나가 되어 그와 같은 위력을 얻기를 서원하는 내용으로, 글에 담긴 뜻을 한 구절씩 해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원(一圓)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입정처(入定處)요”
영혼이 공적성성(空寂惺惺)한 진공(眞空)의 중심인 단전(丹田)으로 호흡을 하며 입정(入定)을 하면 육근(六根)을 통한 육식(六識)의 작용이 중단되어서 마음과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말을 주고받을 수 없는 영혼의 휴식 상태가 되는데, 이를 언어도단의 입정처라고 하는 것이지요.
“유무초월(有無超越)의 생사문(生死門)인 바”
일원의 유(有)의 측면을 보면 영적으로는 분별성이 있어서 마음과 생각이 일어난 상태이고, 기적으로는 물질로 나타난 모든 것으로 인한 색성향미촉법 작용이 있는 상태라 할 수 있고, 이를 생(生)의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無)의 측면으로 보면 영적으로는 분별성이 없는 정신 상태이고, 기적으로는 물질로 나타나기 이전인 진공상태라 할 수가 있으며 또한 사(死)의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유무념대조, 감각감상, 심신작용처리건을 일기로 작성하면서 의문점이 있는 부분은 따로 표시해 두었다가 스승님에게 문답도 하고 감정도 받아야 높은 수준의 인격으로 발전해 갈 수 있답니다.
만약 귀찮다는 이유로 일기 쓰기와 문답감정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자신의 하루가 진정으로 가치 있는 생활이었는지 아니면 잘못된 생활이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높은 수준의 인격을 갖추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인격적 성장과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반드시 옳은 스승을 찾아서 문답도 하고 감정을 받아야 하겠지요.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