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 당당히 나설 수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였다. 이렇게 연필로 줄 긋고 옮겨 적어야 할 말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어진다고 했지만 내용상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읽어도 되고 어느 한 부분만 따로 그렇게 해도 된다. 어느 쪽을 펼치든지 공자라는 사람이 왜 대단하고, 그가 한 말이 지금도 여전히 오르내리고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된다. (논어 중에서 94페이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 이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기기만 할 뿐, 그것들과 결코 겨루는 일이 없 으며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해 흐를 뿐이다. 그러기에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도는 실천하기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낮은 곳이 아닌 높은 곳을 원하기 때문이다. 물처럼 언제나 낮은 곳을 찾는 일은 보통 인간은 어찌해 볼 수 없는, 신의 경지에 오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도덕경 중에서 100페이지)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의 일이다. 그 후 커서도 그 시절의 추억을 못 이 겨 섬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간혹 낚싯대를 챙기곤 했다. 그러나 ‘씨름’할 정도로 무거운 녀석을 잡아 보지는 못했다. 남들이 월척급이라고 하는 미 터 절반급 몇 마리가 내 낚시 인생의 성과라고 해야겠다.
장황한 사설을 늘어놓는 것은 이번 호 나의 고전 읽기가 바다와 낚시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그것이다. 헤밍 웨이가 살았던 바다는 내가 살았던 바다와는 달랐다. 서해의 작은 포구가 아니라 멕시코만의 망망대해가 그가 놀았던 터전이었다.
한때 노련한 어부였던 산티아고는 이제 늙었다. 야위고 수척했으며 목 덜미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누가 봐도 노인티가 역력했다. 세월의 상처를 피하지 못한 늙은 어부의 신세가 바로 산티아고였다. 하지만 다른 신체는 모두 노인의 것이었지만 눈만은 바다 색깔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기 운차고 패배를 모르는 의욕이 노인의 양어깨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던 것 이다. (노인과 바다 에서 152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