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진 협력과 공감 본능이 확장된 사회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통용되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인간은 종족 보존과 번식을 위해 때로 투쟁했지만 대부분은 구성원에게 협력하며 진화해 왔다. 공동노동, 집단사냥을 통해 결속했고 구성원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슬퍼했다.
필자는 경제와 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전망하면서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한 변수로 보아야 한다고 본다. 왜냐면 사회적 인간의 삶의 목적은 생존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이며,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도 지구와 타인 모두와 공존할 수 있는 인간의 패러다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8쪽)
2008년 《맥킨지(McKinsey)》엔 전설적인 논문 〈When Growth Stalls〉가 게재되었다. “성장이 멈출 때”,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다 정체 이후 완만한 하락이 아닌 급격한 추락을 맞은 기업들의 특징은 모두 ‘No Soft Landings’, 즉 급격한 추락을 맞았다는 것이다. 공통점은 단기적 처방에 기업의 역량이 집중되면서 오히려 근본적인 해결을 할 수 있는 역량이 고갈되어 이후로도 계속 단기 대증요법으로만 처방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잘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계속 잘해야 하고, 너무나 중요하지만 취약한 분야에 대해서는 국가적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 분야를 반도체, 그린에너지, 교육 역량이라고 본다. 반도체가 매일 전투가 벌어지는 치열한 격전지라면 그린에너지와 교육 문제는 중기적 국가 전략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 117쪽)
통합가치 이론과 기존의 공유가치, 지속가능 경영 등의 기업가치 이론과의 가장 큰 결정적 차이란 무엇일까? 공유가치 이론이나 윤리경영과 같은 기업가치 이론은 지속가능 경영을 위해 사회적 문제에서 가치를 찾거나 사용한 지구 재원만큼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기업 중심의 관점에서 문제를 고찰했다면, 통합가치 이론은 기아와 총기살인, 환경오염과 종교 분쟁, 패권 쟁탈로 인한 신흥국의 비극, 부의 양극화와 가난의 대물림과 같은 공고하고 낡은 시스템까지 혁신하는 데 기업의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모든 공급사슬과 자원의 분배사슬, 그리고 지구자원의 증발 경로를 통합적으로 고찰해서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185쪽)
태양과 바람, 중수소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존재한다. 거대한 발전소에서 기업과 가정으로 전력을 보내기 위해 깔았던 낡은 그리드는 지역 분산형으로 바뀔 것이다. 이웃들은 전기를 공유하고 정부와 지자체는 남는 전기를 나누기 위한 인프라를 확대할 것이다. 유럽과 같은 인접국이 밀집한 대륙에선 기상 상황에 따라 국가별로 재생에너지 전력을 공유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본질적으로 공유와 분산, 확대했을 때 그 가치가 있다. 구름이 잔뜩 낀 나라에 화창한 나라의 태양광 전력이 공급되고, 다음 주엔 바람 좋은 나라의 전력이 비 내리는 나라에 전력을 나눠 주는 방식인데, 이것은 지역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러한 변화를 위해 인프라를 2030년까지는 재편하고 2050년엔 탄소제로를 실현하려 하고 있다.
그린에너지 밸류 체인을 두고 경합하는 지금이 바로 1980년대의 실리콘밸리와 같다. 한국이 집중하고 혁신해야 하는 이유다. 이는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다. 인류의 영속과 후대의 안전, 지구생태계와의 공생을 위한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그린 에너지와 관련한 과학기술 혁신은 인류 전체를 위한 과업이 되었다. ( 286쪽)
생명에 대한 애착. 타인에 대한 배려심. 대자연의 순환. 자연스러운 삶과 자연스러운 죽음. 타인에 대한 공감과 지구에 대한 경외심. 지구가 창조해 낸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심. 버려지고 낭비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적절한 노동과 웃음이 깃든 저녁과 휴가. 태양과 바람을 막은 회색 빌딩지대에 대한 두려움. 숲길과 비 온 뒤 푸른 하늘이 선사하는 경이로움.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며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을 강화하는 요인들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철학적 사유는 바로 ‘관계성으로 인한 인간 윤리’다. 그리고 이 관계성에 대한 사유야말로 인간만이 가진 가장 발전한 사회적 지능으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변화는 인간 본성에 걸맞아 자연스럽고 타인과 세상에도 이롭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점은 유아기의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른바 생태교육이다. 숲으로 떠나 흙을 만지고 딱정벌레를 관찰하고 강아지를 품에 안고 그 심장 소리를 느끼며 황홀경에 빠지는 교육. 이미 독일과 미국에선 ‘숲속학교’라는 이름의 교육 프로그램이 팬데믹을 거치며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 3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