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바람이 많이 부는 봄날이면,
담덕이는 그 많은 털 사이사이에 온갖 종류의 꽃잎들을 섞어 와
담덕이 털 사이로 꽃이 피어날 것 같다.
온실에서 꽃피운 라벤더들을 노지에 옮겨 심었다.
엄마가 일하는 동안 담덕이는 라벤더 화분에게 인사하고.
마당 곳곳에 자리한 오십여 그루의
크고 작은 라일락 향이 다음 주엔 가득할 것 같다.
나의 손마디는 더 굵어지고 발뒤꿈치는 더 거칠어지지만
늘 벅찬 감동으로 봄날을 보낸다. (28쪽)
우리만 아는 집 뒤편 대나무숲의 한적하고 비밀스런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가 나타나 담덕이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담덕이를 데리고 얼른 집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아주 오래전 만든 어여쁜 토끼 인형을 볕이 좋았던 날 깨끗이 씻어 담덕이 눈에 잘 띄지 않는 피아노 위에 올려 두고 말해 주었다.
“이상한 나라로 가고 싶으면 너 혼자 가거라.
여기 도자기로 만든 꽃무늬 자동차를 네 옆에 둘 테니 언제든 타고 갔다가 오렴.
대신 담덕이는 절대 데려가면 안 돼.”
낙엽 위로 가을비가 내리며 정원에 안개가 자욱한 오늘 같은 날은 뒷산 나무들이 움직이며 어떤 다른 세계가 나타날 것만 같다. (140쪽)
3월에 내리는 새해 첫눈이다.
눈이 내리면 멈춤, 세상은 느려지고 부드러워진다.
나는 따뜻한 기억 속 어린 시절로 시간 여행을 하며 뜨개실로 연결된 벙어리장갑을 끼고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진눈깨비로 바뀐 하늘을 보며 담덕이도 멈춤, 10살이 된 담덕이는 이제 뛰어놀기보다 야외 부엌 처마 밑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더니 어느새 그린게이블즈 안으로 들어와 창밖을 보고 있다.
눈이 사라지기 전에 뽀드득 눈 발자국을 만들어 보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둘 테니 마음껏 바라보다 오너라.
나는 너에게 더 많은 행복을 주고 싶어. (270쪽)